
1922년 12월, 한겨울의 모래섬에 5만 명이 모였습니다. 조선 최초의 비행사 안창남의 고국 방문 비행을 보기 위해서였죠. 홍수가 나면 잠기고, 소와 양을 치던 그 섬 — 여의도입니다. 100년이 지난 지금 이 섬의 1971년식 아파트는 전용 79㎡가 29억 원에 거래됩니다. 이 글은 그 100년을 연표와 실거래 데이터로 따라갑니다.
📌 3줄 요약
- 1916년 비행장이던 모래섬 여의도 — 1968년 밤섬 폭파와 110일 윤중제 공사로 팔자가 바뀌었습니다.
- 1971년 시범아파트(최고 13층)가 2026년 전용 79㎡ 29억 — 65층 재건축까지 추진 중입니다.
- 폭파했던 밤섬은 람사르 습지로 부활 — 여의도 100년의 가장 큰 반전입니다.
‘너나 가져라’던 섬 — 이름의 진실
여의도(汝矣島)라는 이름을 두고 “너나 가져라”에서 왔다는 이야기가 전해집니다. 사실 이는 민간어원에 가깝고, 국어학계의 정설은 잉화도·나의도·여의도가 모두 고유어 ‘너벌섬(넓은 벌판의 섬)’을 한자로 옮긴 표기라는 것입니다. 다만 그런 우스갯소리가 전해질 만큼, 이 섬이 오랫동안 쓸모없는 땅 취급을 받았다는 것만은 분명합니다.
여의도 100년 연표 — 비행장에서 금융도시까지
| 연도 | 사건 | 의미 |
|---|---|---|
| 1916 | 한국 최초의 비행장 설치 | 모래벌판의 첫 쓸모 |
| 1922.12 | 안창남 고국 방문 비행 — 5만 인파 | 섬에 처음 모인 군중 |
| 1954 | 국제공항 정식 개항 | 이후 민간 기능은 김포로 이전 |
| 1968.2 | 밤섬 폭파 — 윤중제 골재 확보 (62가구 400여 명 이주) | 여의도 개발의 시작 |
| 1968.6 | 윤중제 준공 — 7.6km 둑을 110일 만에 (연인원 52만) | 땅의 팔자가 바뀐 순간 |
| 1971.10 | 시범아파트 준공 — 한국 최초의 ‘단지형’ 고층아파트 (최고 13층·1,584가구) | 첫 엘리베이터 아파트 단지 |
| 1979.7 | 증권거래소 명동 → 여의도 이전 | 증권가 형성의 기점 |
| 1985 | 63빌딩 (당시 아시아 최고층) | 스카이라인의 상징 |
| 2009 | 금융중심지 공식 지정 | ‘한국의 월스트리트’ |
| 2012~2020 | IFC → 파크원(333m) | 현재의 스카이라인 완성 |
영상에서는 이 100년을 8분으로 압축했습니다 — 밤섬 폭파 장면부터 시범아파트, 되살아난 밤섬까지.
1971년 아파트가 29억 — 그리고 65층 재건축
110일 만에 쌓은 둑 위에 세워진 시범아파트는 2026년 기준 전용 79㎡ 실거래 29억 원(2026.6, 평균 27.7억), 전용 156㎡는 41억 신고가를 기록했습니다. 참고로 시범아파트에는 흔한 전용 84㎡가 없습니다 — 1971년 설계라 평형 체계 자체가 다르죠.
- 시범아파트: 서울시 신속통합기획으로 최고 65층·2,493가구 재건축 추진 — 시공사 선정 단계
- 한양아파트: 대교아파트에 이어 여의도 두 번째 관리처분인가 (2026.7, 현대건설·53층)
폭파한 섬의 반전 — 밤섬
여의도를 만들기 위해 1968년 폭파된 밤섬은 그 뒤 수십 년 퇴적으로 스스로 되살아나, 1999년 서울시 생태경관보전지역 1호를 거쳐 2012년 람사르 습지로 지정됐습니다. 도시를 만들려고 부순 섬이 생태의 상징이 된 것 — 여의도 이야기의 가장 큰 반전입니다.
동탄 공식으로 다시 보기
동탄 편에서 정리한 ‘땅의 팔자 공식’은 ①이름표(지목)가 바뀌는가 ②바뀐 판 안에서 어디인가였습니다. 여의도는 여기에 세 번째 조건을 더합니다 — ③무엇이 들어오는가. 같은 매립지라도 아파트만 들어온 땅과, 증권거래소·국회·방송국이 들어온 땅의 팔자는 달랐습니다. 기관이 모이자 돈이 모였고, 돈이 모이자 서울 최상위 평당가가 됐습니다.
다음 이야기는 쓰레기산이 하늘공원과 13억 아파트가 된 난지도로 이어집니다.
자료: 국토교통부 실거래가 공개시스템(2026), 서울시·국가기록원 공개자료. 본 글은 특정 단지에 대한 투자 권유가 아니며, 역사와 데이터를 정리한 콘텐츠입니다.












